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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달라이 라마(Dalai Lama)에 대해서

달라이 라마(Dalai Lama)에 대해서

 

달라이 라마의 뜻을 감히 풀이하자면 몽골어로 '달라이'는 큰바다를 뜻하고, '라마'는 티베트어로 영적인 스승을 뜻하는 단어가 합쳐진 말입니다. 직역하면 '넓은 바다와 같이 넓고  큰덕의 소유자인 스승'을 의미하는 것이죠. 14대 달라이 라마인 텐진 가초(Tenzin Gyatso)는 티베트의 자치권 확대를 주장하는 티베트 망명정부의 실질적 지도자이자 정신적 지주입니다.

 

 

 

 

자유와 평화의 선택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달라이 라마의 법명은 ‘텐진 가초’입니다. 1940년제14대 달라이 라마로 즉위한 이래 티베트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20세기를 건너온 묵직한 삶의 주인공이죠. 티베트는 지리적으로 중국, 러시아, 인도 등의 강한 세력 사이에 끼어있어 오랫동안 지정학적 요충지로 열강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역사적으로도 중국과 몽골 등의 지배를 받으며 정체성을 어렵게 유지해오고 있는 것이죠.


1950년 중국은 티베트를 무력 침공했고,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1951년 중국의 종주권과 티베트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중국의 지배하에 들어가고 맙니다.  티베트인들에 대한 중국의 박해가 반복되자 1959년 반란을 일으키지만 12만 명이 학살되는 참담한 결과만을 남기게 됩니다. 그와 함께 달라이 라마는 인도로 망명을 했는데요, 1965년 중국 정부는 티베트를 자치구로 만들어 민족자치를 인정하고 자치구에 편입시키게 됩니다. 그러는 동안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헌법을 기초하고 학교와 공장을 설립하는 활발한 활동을 통해 티베트의 문화와 정체성을 확립하는 활동에 몰입하게 됩니다.

 

 

달라이 라마 (Dalai Lama)

1935년 티베트 암도 지방의 농가에서 출생해 1940년 제14대 달라이 라마로 공식 취임했습니다. 1951년 중국 인민해방군이 티베트을 통치하기 시작하자, 1959년 3월 중국 공산당을 피해 인도로 망명을 합니다. 이후 달라이 라마가 세운 인도 다람살라의 망명정부는 티베트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되었고, 국제사회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아 198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죠.

 

비폭력 노선을 견지하면서 지속적으로 티베트의 독립운동을 전개해 UN에서 티베트의 인권과 자치권을 존중하는 결의안을 얻어내는 동시에, 티베트의 무장 게릴라 조직인 캄바를 해산시키는 등 내적인 평화유지활동도 함께 추진했습니다. 이러한 공로로 198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여전히 중국은 티베트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은 상태고, 젊은 승려를 중심으로 중국으로부터의 독립과 자유로운 티베트를 이루려는 노력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평화와 자유는 스스로에게

중국의 탄압이 거세지자 티베트의 승려들은 무장투장을 하자거나, 분신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으로 저항하자는 목소리들이 높아졌습니다. 비폭력 노선에 선 달라이 라마를 비난하는 과격파들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달라이 라마는 자신의 생각을 지켜나갔고 중국을 적이 아닌 인간으로 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나의 행복이 다른 사람에게 달려 있음을 늘 강조했는데요, '내가 행복해지고 싶다면 먼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혼자 행복하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해봐야 자기라는 개체 속에 갇히는 것 외에 아무것도 얻을 수 없고, 채울 수 없는 욕망만 커지고 소통은 불가능해져 외로움만 깊어진다'는 개념을 강조했습니다..


달라이 라마는 자신의 마음이 훈련되어 있지 않으면 마음의 평화는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에 쉽게 무너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다. 어떠한 적이 나타나더라도 마음의 평온만 유지할 수 있다면 내적인 평화를 깨드릴 수는 없으니, 중국 정부의 티베트에 대한 탄압이 아무리 심해도 스스로 마음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